시간의 궤적 안에서 이미지는 단순히 시각적 잔상에 머물지 않고, 그 존재가 살아온 고통의 총량을 증명하는 물화된 증거가 된다. 지금껏 우리가 이미지의 박동과 시간의 중첩을 다루며 예술적 사유의 지평을 넓혀왔다면, 이제 그 논의의 초점은 한 개인(Louise Bourgeois)의 내밀한 연대기가 어떻게 보편적 미술사의 거대한 서사가 되었는지로 향해본다.
바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라는, 시대의 경계를 횡단한 거장의 생애와 그녀가 남긴 심리적 유산에 대한 이야기다. 부르주아의 작업은 페미니즘, 정신분석, 젠더, 신체, 기억, 그리고 트라우마라는 동시대 미술의 핵심 담론들을 가로지르며, 오늘날까지도 그 강력한 영향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뉴욕 자택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2003. 사진: 낸다 랜프랭코,
ⓒ The Easton Foundation/Licensed by SACK, Korea 출처: 호암미술관
그녀는 평생에 걸쳐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은 감정들을 기록해 왔으며, 사후에 출간된 이 방대한 기록들은 우리가 그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단순히 심미적인 관점을 넘어서, 심리적·철학적 지도를 제공한다. 우리는 여기서 1968년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을 주목해야 한다. 68혁명은 서구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와 억압적 질서를 해체하며, 그간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여성적 서사를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거대한 인식의 전환 속에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들은 비로소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 이전의 미술사에서 이토록 처절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유년기 트라우마와 성적 욕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자기 고백적’으로 서술한 작가는 전무했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상처를 은폐하거나 상징 뒤에 숨기지 않고, 그것을 구체적인 물성으로 치환하여 관객 앞에 던져놓았다. 이는 이전의 예술이 추구했던 보편적 미학이나 형식적 완결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지극히 사적이며 동시에 혁명적인 도발이었다
집-여자(Femme Maison), 1946-47 리넨에 유채, 잉크 91.4x35.6 cm 사진: 크리스토퍼 버크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출처: 호암미술관
부르주아의 서사는 1911년 파리의 한 태피스트리 수선 공방에서 시작된다. 실을 잣고, 찢어진 부분을 꿰매며, 유실된 조각을 연결하는 어머니의 손길은 어린 루이스에게 파괴된 세상을 복구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유년은 평화로운 직조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불륜, 그리고 그 상대가 자신의 영어 가정교사였다는 사실은 어린 소녀에게 회복 불가능한 배신감과 유기 공포를 심어주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이었으나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었고, 어머니는 인내의 화신이었으나 동시에 보호받지 못한 희생자였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의 타래는 그녀의 평생을 지배하는 예술적 동력이 되었다. 그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바늘’과 ‘실’, 그리고 거대한 거미 ‘마망(Maman)’은 단순히 형태적 선택이 아니라, 찢어진 자아를 봉합하려는 절박한 시도이자 트라우마의 재구성이었다.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2017 보존용 폴리우레탄 수지, 목 재, 천, 붉은 조명 237.8x362.3x248.6 cm 글렌스톤 미술관 소장, 포토 맥, 메릴랜드, 미국 사진: 크리스토퍼 버크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Korea 출처: 호암미술관
68혁명이 가져온 페미니즘적 해방구는 부르주아에게 이러한 사적 서사를 공적 담론으로 확장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녀의 1940년대 작품 ‘여인 집(Femme Maison)’에서부터 나타난 여성의 신체와 건축물의 기괴한 결합은, 여성이 가정이라는 구조물에 귀속되어야 했던 억압적 현실을 고발하는 동시에 젠더 정체성에 대한 선구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는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더욱 공격적이고 원초적인 형태로 발전한다. 1974년작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는 식탁 위에 차려진 아버지의 신체를 자녀들이 나누어 먹는다는 잔혹한 상상을 시각화함으로써, 프로이트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넘어선 가부장제에 대한 실존적 살해를 감행했다. 이처럼 부르주아의 작품은 정신분석학적 도구 없이 온전히 해석될 수 없다. 그녀는 무의식 속에 침잠해 있던 억눌린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그것에 입체적 무게를 부여했다.
밀실(검은 날들)(Cell (Black Days)), 2006, 철, 천, 대리석, 유리, 고무, 실, 목재 304.8x397.5x299.7cm 이스턴 재단 소장, 뉴욕 사진: 크리스토퍼 버크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출처: 호암미술관
그녀의 서사는 9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사후 출간된 일기장들은 그녀의 조각들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매일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부적’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녀는 "나는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조각을 한다. 조각을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한 보증 수표이다."(I am sculpting to save myself. Sculpting is a guarantor's check for my mental health.)라고 고백하며, 창작 행위 자체가 치유의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그녀가 창조한 거대한 거미는 우리를 압도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을 품어 안는 모성적 보호막이자, 끊임없이 의미를 직조해내는 예술가의 초상이다.
커플(The Couple), 2003 알루미늄 365.1 x 200 x 109.9 cm 개인 소장, 뉴욕 사진: 조너선 라이언후브우 드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출처: 호암미술관
부르주아 이전의 미술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부르주아는 ‘자신의 심연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를 질문했다. 이러한 그녀의 고백적 서사는 현대 미술에서 작가의 개인적 서사가 어떻게 보편적 울림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하고 새로운 지평을 연 서막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각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생애를 관통하는 이 집요한 기록과 형상화의 작업은, 이미지와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꽃(Les Fleurs), 2009 종이에 과슈, 12점 연작 59.7x45.7 cm 사진: 크리스토퍼 버크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출처: 호암미술관
그녀가 남긴 텍스트와 조각들은 이제 동시대 미술의 거대한 뿌리가 되어, 상처 입은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용기를 건네고 있다. 결국 부르주아의 예술 사유는 나를 파괴한 기억으로부터 나를 재건하는 고통스러운 연금술이었으며, 그 연금술의 과정이 바로 우리가 목도하는 위대한 미술사의 한 페이지가 된 것이다. 그녀의 거미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며 보이지 않는 실을 잣고 있듯, 부르주아의 서사는 이미지와 철학이 만나는 가장 뜨거운 지점에서 영원히 박동할 것이다
(ART&BIZ= 정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