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의 조각은 재현의 차원을 넘어, 존재가 어떻게 생성되고 분화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향한 조형적 사유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작가를 1세대 여성 조각가로 분류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 명명만으로 그의 작업 세계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김윤신은 언제나 어떤 계보나 중심 서사로부터 비켜 있었고, 바로 그 비켜섬 자체가 그의 미학이자 철학으로 작동한다.
KIM YUN SHIN ; Portrait of the Artist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Kukje Gallery, Seoul and Busan. Photo by Lee Woojeong. 리만머핀 서울 제공
김윤신은 나무라는 물질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삶의 원형을 감각한다.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을 통과하며 예술을 시대의 증언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존재와 세계를 사유하는 깊이와 확장의 장으로 밀어 올렸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하나의 연속적인 사유의 궤적 위에 놓인다.
김윤신은 1935년 원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균열 속에서 작가의 유년은 끊임없는 이동과 상실로 채워졌다. 가족은 흩어졌고, 삶은 늘 임시적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나뉨’의 감각으로 남는다. 그러나 김윤신의 예술은 상처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나뉨을 비극으로 고정하지 않고, 나뉨 이후 다시 합쳐지는 세계의 가능성을 조형으로 탐색해왔다.
KIM YUN SHIN ; Song of My Soul 2015-49, 2015 (detail)
Signed & dated on each panel's recto oil on canvas
3 panels, each: 59 x 70 7/8 x 1 inches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Kukje Gallery, Seoul and Busan. 리만머핀 서울 제공
작업 세계를 지시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노자의 철학에서 출발한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다시 둘로 나뉜다는 이 철학적 명제이자 조형적 사유의 원리는 김윤신에게 우주와 생명의 생성 원리를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나라는 존재, 가족이라는 단위, 국가와 세계는 모두 분열과 결합을 반복하며 점진적으로 성립한다. 김윤신은 이 원리를 관념이 아닌 물질과 작품적 노동으로 끌어낸다.
KIM YUN SHIN ; The artist at work in her studio, 2025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Kukje Gallery, Seoul and Busan. 리만머핀 서울 제공
그가 선택한 재료는 나무다. 나무는 그에게 조형 재료 이전에 생명체이며, 시간의 축적이다. 특히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 만난 남미의 나무는 그의 작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돌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그 나무들은 인간의 힘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전기톱을 밀어 넣는 순간, 작가의 몸과 나무의 저항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김윤신은 이 충돌의 순간을 조각의 핵심으로 여긴다. 자르는 행위는 파괴가 아니라, 서로 다른 힘이 부딪히며 하나의 형태로 수렴되는 과정이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에서 작가는 나무를 쪼개고, 비우고, 다시 결합한다. 겉껍질을 나누고 내부 공간을 드러내며, 나무 덩어리는 점차 부드럽고 유기적인 형태로 변모한다. 이 과정은 육체의 극한을 통과하며, 행위는 사유로 전이된다. 김윤신은 나무를 지배하지 않는다. 작가는 나무가 스스로 드러내는 선과 결을 기다린다. 이는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 인위적 개입을 거두되 사유의 깊이는 극대화하는 태도와 상응한다.
KIM YUN SHIN ; The artist at work in her studio, 2023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Kukje Gallery, Seoul and Busan. 리만머핀 서울 제공
수직으로 축적된 「기원 쌓기」 연작은 돌탑과 토템폴처럼, 인간의 염원과 초월적 지향을 시각화한다. 하늘을 향해 곧게 선 이 조각들은 단순한 형태를 넘어, 기도의 구조를 품는다. 작가는 이를 “하늘을 향한 염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초월적 존재를 향한 호소라기보다, 인간과 자연이 다시 하나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몸의 언어에 가깝다.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을 가르지 않는 사유가 바로 여기서 조형적 언어로 구현된다.
김윤신의 회화 역시 조각의 연장선에 있다. 강렬한 원색과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화면은 조각에서의 ‘합’과 ‘분’을 평면으로 옮겨온 결과다. 나이프로 물감을 긁어내며 화면을 나누는 행위는, 나무를 깎아 공간을 드러내는 조각적 사고와 동일한 리듬을 지닌다. 아르헨티나에서 접한 원주민 토테미즘의 색채와 문양,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오방색과 닮아 있음을 깨달은 경험은 그의 회화를 문화적 경계를 넘는 보편적 언어로 확장시킨다.
KIM YUN SHIN ; Installation view: Biennale Arte 2024
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
April 20 - November 24, 2024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Kukje Gallery, Seoul and Busan. Photo by Andrea Rossetti. 리만머핀 서울 제공
김윤신이 오늘날 세계 미술계에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조각과 회화, 동양 철학과 남미의 자연, 한국적 기억과 세계적 감각을 하나의 사유 구조로 통합해낸 드문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90세가 넘은 지금도 전기톱을 들고 작업실에 서 있는 작가의 모습은, 예술이 생의 특정 시기에 속하는 활동이 아니라 존재 방식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KIM YUN SHIN ; Add Two Add One Divide Two Divide One 1984-11, 1984
algarrobo wood
62 1/4 x 24 3/4 x 21 5/8 inches
Courtesy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Kukje Gallery, Seoul and Busan. 리만머핀 서울 제공
김윤신은 나무 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끌어낸다. 한국 현대미술이 어떻게 재현을 넘어 사유의 깊이로 이동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나무는 나뉘고, 다시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김윤신의 예술은 지금도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다.
(ART&BIZ= 정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