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파 작가와 그의 작품, 작가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을 그로테스크하게, 사르키즘을 섞어 작업하고 있다. (사진= 김진부 기자)
장파 작가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9일 오픈했다. 전시 제목은 'GORE DECO'다. 전시 제목도 그로테스크하고 의미심장하지만, 전시를 실제로 보면 자신이, 아니 인간이 얼마나 타자화되어 있는지를 바로 깨닫게 된다. 욕망을 타자화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장파 작가의 이번 전시를 꼭 봐야 한다.
장파의 작품을 회피하지 않고 직관할 수 있다면, 눈치보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면, 이제 장파의 예술 세계로 빠져 볼 준비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함께 들어가 보자. 참고로 이번 전시의 제목 GORE DOCO는 말 그대로 '피로 범벅이 된 상처의 아름다움'이라고 의역해 볼 수 있겠다. 상처와 피투성이의 여성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지점이 바로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장파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장파 작가가 누구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장파(b. 1981, 본명 장소연)는 2006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와 미학과를 졸업하고, 2017년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석사 졸업하였다. 뉴욕에서 레지던시 경험이 있지만 해외에서 공부하지 않은 국내파다. 게다가 그의 작품을 보면 갤러리 보다는 미술관이 어울리는 작가라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국제갤러리가 장파를 선택했다는 것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주목해야 할 작가가 됐다.
국제갤러리 전시를 보러 가게 된다면, 2개의 전시를 같이 봐야 한다. 장파 작가 전시와 다니엘 보이드 전시다. 장파 작가가 젠터 그로테스크로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여성을 다뤘다면, 다니엘 보이드는 유럽 서구 중심의 역사에서 소외된 호주 원주민을 다뤘다. 두 작가가 닮아도 너무 닮아 있어서 함께 감상하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큐레이팅이 멋지다. 이제 작품 얘기로 넘어가자. 지루해도 꼭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장파의 아름다음은 다르다
장파는 회화와 글을 통해 ‘그림’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된 개념을 비판하며, 여성적 그로테스크와 역사적으로 타자화된 감각들을 시각적으로 탐구해왔다. 그는 남성 중심의 시각 언어에 의문을 제기하고, 여성주의적 주체성을 회화적 어법으로 확장하며, 여성의 신체 및 감각을 주체적 형상으로 재구성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전시 제목과 동명인 회화 연작 〈Gore Deco〉를 비롯해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약 45점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통적 여성 이미지를 재맥락화하고, 유머와 비틀기를 활용하여 기존의 시선을 전복하고자 한다.
《Gore Deco》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신체와 정체성이 폭력적 구조에 놓이게 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동시에 ‘장식’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위계적 함의에 주목한다. ‘Gore’는 여성, 퀴어, 소수자 등 중심부에서 배제된 주체들의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Deco’는 종종 하찮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온 장식성과 그에 얽힌 미적·사회적 질서를 상징한다. 전시는 서로 생경한 두 감각을 병치함으로써, 신체와 장식, 숭고와 혐오, 위계와 향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균열을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회화적 전통 자체를 해체하고 부정하고 냉소하는 것에 머물게 하는 대신, 기존 질서의 편협함을 감각적으로 수용하고 회화적 표현의 확장된 경계와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목도하도록 이끈다. 다음은 국제갤러리 전시장 별 전시 설명이다.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1. 국제갤러리 K1 (1층)
‘Gore’와 ‘Deco’, 두 요소의 만남은 K1과 K2의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K1 1층 안쪽에 자리한 전시장에서는 상징성을 띤 삼각형과 십자가 형태의 캔버스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국제갤러리 K1 1F 장파 개인전 《Gore Deco》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성삼위일체와 원근법의 역사 이래 인간의 이성을 상징해온 삼각형은 거꾸로 걸려 있으며, 영적 영역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내장 이미지로 장식된 채 ‘여성화’되어 있다. 마치 내장이 걸린 교회에 들어선 듯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은 기존 질서를 개념적으로 해체할 뿐만 아니라, 고대 건축 양식의 프리즈(frieze)를 연상시키는 실크스크린 기법의 벽화를 통해 과거 여성 재현의 이미지사(史)를 바라보는 작가의 비판적 관점을 응축한다.
장파는 여성의 몸과 정체성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회적 폭력 구조에 포획되는 예시들을 수집해 이를 장식적인 틀 안에 열거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회화 곳곳에서도 발견되는데, 마치 내장의 표면에 아로새겨진 것처럼 보인다. 이는 타투라는 장식적 요소를 통해 회화의 재료인 물감을 한순간 육화하고 회화 감상의 전통적 관행을 교란시키려는 작가의 전략인 셈이다.
2. 국제갤러리 K1(2층)
K1 2층 전시장에서 장파는 해골 도상의 그로테스크함이 다채로운 색감, 그리고 장식성과 충돌하며 자아내는 기이함을 바탕으로, 하위 범주로 자리매김해 온 장식의 역할을 재정의한다. 그는 캔버스 중앙의 해골 형상보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감의 배경을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회화에서 전통적으로 통용되어온 형상과 배경의 위계를 무력화한다.
국제갤러리 K1 1F 장파 개인전 《Gore Deco》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또한 회화면에 장식물, 금속 하드웨어, 머리카락, 거즈, 스티커 같은 비전통적이며 비천한(abject) 재료들을 장식적 요소로 과감히 도입해, 개념화된 색채의 이상을 방해하고 개념과 물질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다. 이러한 작가의 방식은 억압된 육체의 상흔을 장식으로 치환하고, 육체적 감수성을 회복시키며, 고통의 재현을 향유의 경험으로 전환한다.
3. 국제갤러리 K2
K2 전시장에서 장파는 여성의 신체가 다루어지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역사 속 여성 재현의 이미지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발견한 동시대의 여성혐오 이미지,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구 등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캔버스에 전사한 후 파편화된 신체, 내장, 눈과 입술 같은 ‘구멍’의 이미지와 병치한다.
국제갤러리 K1 1F 장파 개인전 《Gore Deco》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이처럼 회화적 순수성과 장식성 사이의 혼종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작가의 전략은 냉소적 유희를 불러일으키며, 시각적 위계와 질서를 일시적으로 붕괴시켜 비판적 층위를 형성한다. 여기서 ‘몸’은 단순히 고통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그 흔적을 발판 삼아 감각적 전복을 수행하는 주체로 재구성된다.
회화 속의 상처는 응시를 요구하고, 분절된 육체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되며, 고통은 정념적 진지함에 포획되기보다 조롱과 유희의 형식으로 비틀린다. 이러한 웃음은 단순한 위안 혹은 해학이 아니라 제도화된 미적 감수성과 윤리적 판단을 교란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장파 작가의 사르카즘(SARCASM)
《Gore Deco》는 하위주체들의 감각과 새로운 시각적 전략을 통해 회화에 내재된 전통적 위계가 놓친 시선을 복원하고 동시대 회화 언어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이는 소외된 신체 경험과 장식의 감각을 매개로 회화가 지닌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장파가 미술사와 이미지사를 참조하고 여성 신체를 둘러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은 때로는 즉흥적이며 사르카즘이 섞인 유머를 동반한 저항으로 보일 수 있지만, 종국에 이는 작가가 회화를 향해 품고 있는 뚜렷한 응시와 진지한 태도를 드러내는 장으로 기능한다.
(아트앤비즈=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