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미 로버트 작가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지미 로버트의 국내 첫 개인전 《에클립세 Éclipser》를 개최한다. 퍼포먼스, 사진, 영상, 조각, 텍스트 등 매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로버트의 실천은 정체성과 가시성, 재현의 정치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그는 퀴어와 인종화된 신체가 역사적 및 동시대적 이미지 생산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유하며 소외되어 왔는지를 질문한다. 로버트는 종이와 같은 취약한 재료와 자신의 신체를 중심에 두고, 움직임과 제스처를 통해 몸, 매체, 공간, 언어가 서로 관계 맺게 한다. 이를 통해 보는 행위와 보이는 존재 사이의 권력 구조를 교란하고, 시각 중심의 미술사적 관습에 균열을 낸다.
이번 전시는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지미 로버트의 주요 작품들과 더불어, 신작 영상-퍼포먼스 〈Éclipser〉(2025)를 선보인다. 초기작에서 그는 필름, 사진 설치, 텍스트 등과 같은 상이한 매체 및 재료를 설치로 BARAKATCONTEMPORARY.COM 1 엮어 각 매체의 통상적인 제작과 수용 방식의 안정을 깨는데, 그 중심에는 로버트 자신과 그의 측근의 신체들이 있다. 〈무제(세바스티앙)〉(2006)과 〈무제(미카엘)〉(2006)은 군 입대를 앞둔 형제들의 모습을 담아 제도와 남성성을 탐구했다. 이와 함께, 좌대나 가구처럼 보이는 나무 구조물은 단순한 전시 장치가 아니라 조각적 요소로 변환되어 사진과 신체를 지탱하거나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의 신체는 때로는 직접 퍼포먼스의 주체로, 때로는 사진 속 대상이나 오브제에 의해 대체된 흔적으로 남는다. 〈플리에 I Plié I〉(2020)에서는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이 종이 부채처럼 접힌 형태로 제시된다. 프랑스어 플리에 plié는 ‘구부리다’, ‘접다’라는 의미와 동시에 발레의 기본 동작을 가리킨다. 종이는 신체의 움직임과 중첩되며, 종이라는 취약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를 통해 유동적인 의미가 생성된다. 한편, 로버트는 일찍이 필름 〈감정 교육 L’education Sentimentale〉(2005)을 시작으로 미술사적 유산과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1869년 동명 소설 제목을 차용한 이 작품은 네덜란드 퍼포먼스 아티스트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의 낙하 시리즈(1970-1971)를 모방하면서, 낙하하는 신체를 구원하는 서사로 전환한다. 이는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유사한 조건에 놓음으로써 미술사에 개입하려는 적극적 시도다. 로버트는 이본 레이너(Yvonne Rainer), 오노 요코(Yoko Ono),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등 미술사적 인물들의 작업을 흉내 내거나 간섭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대화를 이어왔다. 신작 〈에클립세 Éclipser〉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의 연장선이다.
영상이자 퍼포먼스인 이 작품에서 로버트는 차학경(1951–1982)의 아카이브를 촉각을 통해 추적하고 퍼포먼스로 그녀의 존재를 현재로 소환한다. 영상 속 로버트가 장갑 낀 손으로 차학경의 아카이브를 더듬는 행위는 단순한 아카이브 연구를 넘어, 과거의 예술적 유산과 현재의 몸이 만나는 순간을 열어 보인다. 불가능한 만남을 향한 이 호출을 통해 예술적 기억이 어떻게 감각되고 확장되는지 탐색한다. 이러한 신체적 개입은 〈브라운 레더렛 Brown Leatherette〉(2002)에서도 볼 수 있다.
영상 속 로버트는 인조 가죽 소파 위 비슷한 소재의 옷을 입고 재료의 마찰을 온몸으로 감내한다. 배경 속 스며드는 듯한 신체는 움직임을 통해 재료의 질감과 저항을 부각시키고, 이는 시각을 넘어 촉각과 접촉을 통해 공간, 표면, 신체가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전시 제목 〈에클립세 Éclipser〉는 프랑스어로 ‘가리다’, ‘식(蝕)을 일으킨다’를 뜻한다. 동사이지만 영문에서 ~er로 끝나는 명사로 볼 수도 있다. 동사와 명사 사이를 오가고자 하는 것은 지미 로버트의 예술적 태도와 맞닿아 있는 동시에 천체가 가려지는 동선과 나타나는 반영(半影)을 상상해보기 위함이다.
이는 단순히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려지는 순간 드러나는 새로운 형상과 리듬, 보이지 않는 틈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내포한다. 로버트의 작업은 종이와 이미지, 신체와 언어를 접고 가리고 겹치며, 그 사이 공간에서 재료와 신체의 질감의 마찰로써 제3의 의미를 생성한다. 이번 전시는 그가 만들어내는 간헐적이면서도 불완전한 공간 속에서, 재현과 권력이 어떻게 흔들리며 새롭게 배치되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