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이자 전시의 제목인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한영수가 생전에 출간한 사진집 『삶 Korean Lives : after the war 1956–1960』에 수록된 글 「회복기의 사람들」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라는 이 문장은 한국전쟁 직후의 서울을 관통하는 한영수 사진의 핵심 태도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다. 참혹한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작가는 비극의 재현이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방식을 작가의 시선으로 응시한다.
Han Youngsoo, Self-portrait, 1956-1963. ⓒ 2025. 한영수문화재단. All rights reserved (백아트 제공)
1950~60년대의 서울은 ‘가난하지만 빠르게 성장한 산업사회’라는 이미지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나는 한영수의 사진 속 서울은 그러한 단선적 기억을 교정한다. 전쟁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음에도, 그의 프레임 안에는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은 여유와 낭만, 그리고 긍정의 정서가 공존한다. 이는 결핍을 미화하는 낙관이 아니라, 궁핍한 현실 속에서도 삶을 포기되지 않고 작가의 렌즈를 통해 현실과 조우한다.
Han Youngsoo, 서울 명동, Myeongdong, Seoul 1956. ⓒ 2025. 한영수문화재단. All rights reserved (백아트 제공)
박지수 VOSTOK 매거진 편집장이 지적했듯, 한영수의 사진은 한국 도시 이미지 속에 존재해 온 하나의 공백을 채운다. 가난과 폐허에 가려져 기억되지 못했던 도시의 세련됨, 일상의 리듬, 사람들의 태도가 그의 사진 속에서 되살아난다. 도심의 번화가, 거리의 행인, 도심 곳곳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장면들은 전후 서울을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장소’로 다시 치환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영수의 사진이 연출되지 않은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모던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숙련을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의 문제다. 그는 피사체를 연민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를 삶의 높이에 맞춘다. 그래서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비극의 증거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체로 존재한다.
Han Youngsoo, 서울 Seoul 1956-1963. ⓒ 2025. 한영수문화재단. All rights reserved (백아트 제공)
그는 1978년 『디자인』 통권 16호에 실린 글에서 “전쟁 후 나의 관심은 어떤 사람을 그의 주어진 환경에서 포착해 보는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배경이 아니라, 인물이 놓인 조건 전체를 의미한다. 그는 인물을 환경으로부터 분리해 이상화하지도, 환경 속에 종속시켜 상징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프레임 안에서 인물과 공간이 맺는 관계를 그의 프레임 안에 조직하고 창조해 낸다.
그가 언급한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소녀”에 대한 예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영수는 가난 그 자체를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울 수는 없지요”라고 단언함으로써, 피사체의 현실을 미화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태도를 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앵글의 각도에 따라 그 소녀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남루함 속에서 풍겨 나올 수 있다면, 그의 렌즈는 비극의 잔해를 단순한 역사적 흔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그것을 삶을 대면하는 윤리이자 미학의 차원으로 전환한다. 한영수는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거리의 귀퉁이와 일상의 주변부에서 전후 서울이 지닌 세련된 시각 감각과 도시적 리듬을 정밀하게 회귀(回歸)시켜, 개인의 몸짓과 도시 공간을 하나의 화면 안에 병치한다. 생동하는 아이들의 시선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인들의 실루엣은 흑백이라는 형식적 제약을 넘어, 특정 시대를 고정된 이미지로 봉인하기보다 오늘의 시각적 경험 속으로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이미지로 환원시킨다.
Han Youngsoo, 서울 논현동 부근 near Nonhyun-dong, Seoul 1957. © 2025. 한영수문화재단. All rights reserv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어 그는 사진을 “자신의 경험, 인상, 꿈에 대한 통로”라고 정의하며, 기록을 넘어선 개성 표현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 개성은 기법의 과시나 희소한 순간의 포획으로 향하지 않는다. “어떤 기법이나 혹은 어떤 일상의 순간이라도 그저 지나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그의 말은, 연출되지 않은 일상의 연속성 속에서 의미를 축적하려는 사진가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한영수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기록성과 모더니즘 사진의 형식적 감각이 교차하는 독자적인 위치를 형성한다.
이번 전시는 한영수 사진집 5집 출판을 기념하며 마련된 자리로, 1950~60년대 도심과 근교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미공개 사진 약 30점을 선보인다. 이미 잘 알려진 대표작들과 달리, 이번에 공개되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일관되게 ‘삶의 지속성’을 향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전쟁 이후라는 시대적 조건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화면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놓인다.
Han Youngsoo, 서울 Seoul 1956-1963. © 2025. 한영수문화재단. All rights reserv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영수는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 연구회인 ‘신선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한국 사진계에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기록자이자 동시에 창조자로서 그는 한국 사진이 다큐멘터리와 예술 사이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균형점을 제시했다. 2017년 뉴욕 국제 사진센터(ICP) 개인전, 2019년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2022년 LACMA 전시로 이어지는 국제적 재조명은 그의 작업이 특정 시대의 기록을 넘어 보편적 사진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 전시는 관람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필자의 기억과 마주하게 만든다. 1950~60년대를 청년기로 통과한 세대의 얼굴은 사진 속 인물들과 겹쳐지고, 전쟁의 상흔 위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이들의 표정은 누군가(필자)에게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이름 모를 가족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한영수의 사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가 과거를 설명하기보다 기억이 작동하는 통로를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Han Youngsoo, 서울 을지로 1가(구)반도호텔Bando Hotel, Euljiro 1-ga, Seoul 1956-1963. © 2025. 한영수문화재단. All rights reserv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과거를 회고하는 전시가 아니다. 이 전시는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삶을 어떤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이미지를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한영수의 사진은 대답 대신 하나의 태도를 제시한다. 비극을 부정하지 않되, 그 너머에서 지속되는 삶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 그의 사진은 저 너머의 기억을 현재에 호출하는 아련한 향수(鄕愁)를 불어 들이는 특별한 감각을 갖고 있다.
"한영수의 사진은 단순히 전후(戰後)의 폐허를 기록한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시대의 공기를 예민하게 포착해낸 '결정적 순간'들의 집합이며, 반세기가 지난 현재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맥박치는 현재진행형의 서사이다.
(ART&BIZ= 정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