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는 오는 2026년 3월 19일에 열리는 두 미술가의 개인전으로 본격적인 한 해를 시작한다.

로터스 강(b. 1985)
〈Root〉
2022
Cast bronze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LF Documentatio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3월 19일 2026년 첫 개인전 개최

먼저 한옥과 K3 공간에서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로터스 강(Lotus L. Kang)의 국내 첫 개인전 《Chora》가 열린다. 전시는 한옥의 중정, 즉 ‘야외이면서도 그 집의 벽들에 둘러싸여 온전히 야외이지만은 않은’ 독특한 건축 구조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를 K3 내부의 또 다른 공간으로 재생산해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조각·사진·설치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작가는 주로 빛과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는 가변적 재료를 사용해 작품이 시간과 장소에 따른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공간에도 적용시킴으로써 두 전시장은 서로 다른 환경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설정되며, 내부와 외부,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지점을 드러낸다. 이렇듯 작가의 작업은 신체·재료·공간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기억과 정체성이 형성되고 흩어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박찬경(b. 1965)
〈프로젝션〉
2025
Acrylic on paper
91 x 117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3월 박찬경의 개인전

같은 시기 K1에서는 국제갤러리에서 9년 만에 박찬경의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가 열린다. 박찬경은 지난 30여 년간 주로 분단과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을 매개로 한국과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살펴왔다. 작가가 그간 글과 사진, 영상과 설치를 주로 해온 것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20여 점의 신작 회화를 한데 모아 소개한다. 특히 작가는 한국의 민화와 사찰 벽화 등을 해석하고 인용하면서 '전통문화'로 안온하게 틀 지워진 전통을 깨우려 한다. 국내의 여러 절을 다니며 착안한 〈고란사〉(2024), 〈백양사〉(2025), 선불교의 에피소드를 변형해 그린 〈안구선사〉(2025), 〈혜통선사〉(2025) 등의 작품들은 절에 걸린 그림에서 배어나는 간절한 기원,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지혜, 초월하려는 결기 등의 기이한 표현에 주목한다. 한편 〈족자〉 연작(2025), 〈안녕하세요〉 연작(2025), 〈괴석우주〉(2025) 등에서는 민화의 장식성과 매너리즘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우주적 직관과 살아있는 물질에 대한 상상을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는 의식적으로 탱화, 민화, 만화의 형식을 차용해 익명의 화가가 그린 것처럼 개성을 숨기고자 되레 비슷한 이미지를 공유하고 전승하고 반복하면서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독창성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홍승혜(b. 1959)
〈표정 연습〉 스틸 이미지
2025
Single-channel video, color, silent
4 min. 15 sec.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4월 말 부산점에서 개인전

4월 말에는 부산점에서 홍승혜의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을 개최한다. 2023년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복선을 넘어서 II》에서 작가는 픽셀 기반의 조형 언어를 벗어나 벡터의 유연한 형식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을 보여주었다. 올해 부산 전시에서는 2000년대 초에 시작한 평면의 운동성 실험부터 애니메이션과 퍼포먼스로 이어지는 움직임의 역사를 아우르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이동 중”은 작품 속 이미지의 지속적인 이동과 형식·매체·감각의 변화는 물론, 영상이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지닌 운동성을 폭넓게 아우르며, 앞으로의 작업이 향할 열린 방향성을 암시한다.

전시는 특히 홍승혜의 작업 세계에서 핵심을 이루어 온 ‘움직이는 이미지’에 집중한다. 컴퓨터 화면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형태들이 시간성을 획득하며 화면 안에서 움직이고, 서사 없이도 감각적이며 정서적인 울림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애니메이션 작업이 전시의 중심이 된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본래 가진 운동성과 시간적 전개는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구조, 리듬, 배열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음표를 배열하듯 이미지의 움직임을 구성해온 홍승혜의 조형적 방법론은, 작가가 처음 마주하는 부산점의 건축적 조건과 만나 또 다른 전개로 이어질 것이다. 정지해 있을 수 없는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변화, 그리고 이행의 감각이 이번 전시에서 어떤 새로운 흐름으로 펼쳐질지 기대를 모은다.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
〈Lilies〉
1984
Silver gelatin
50.8 x 40.6 cm
© The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6월 현대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6월에는 한옥 공간에서 미국의 현대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20세기 후반 전 세계의 비평가와 예술가들에게 뜨거운 호평을 받음과 동시에, 사회적 논쟁과 예술 검열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메이플소프는 탐미적인 정물 사진부터 유명 인사의 초상, 섹슈얼리티를 실험한 사진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는 시대적 금기와 그의 상상력이 만나 불러일으킨 사회적 반향을 넘어, 순수한 예술형식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인물 초상 사진과 꽃을 포함한 정물 사진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대상의 시의성이나 화제성을 떠나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조형적 구도나 균형의 완벽미에 주목할 예정이다.

김경태(b. 1983)
〈황동 육각 너트 M11.IMG〉
2016
Archival pigment print
125 x 100 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6월 구본창 작가 기획 단체전

비슷한 시기, K1과 K2에서는 한국 현대사진사의 흐름을 일군 구본창 작가의 기획으로 한국 사진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단체전이 열린다. 사진 매체는 태생적으로 기술의 발달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포토샵의 시대를 지나 눈앞의 대상을 직접 촬영한 이미지와 신기술로 조작된 이미지의 구분이 더욱 어려워진 인공지능(AI)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번 전시는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행위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하고자 한다. 전시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사진작가들의 정물 작업을 소개하며, 특정 사진기술보다는 카메라의 핵심 구성요소인 ‘렌즈’를 통해 사물을 관찰하고 그 물성을 탐구하는 작가들의 태도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익숙하지만 묵묵히 존재해온 대상을 강요하지 않는 시선으로 담아낸 작업들을 통해, 사물의 존재가 드러나는 방식에 주목하고 사진을 사유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기획전이 될 것이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작가 프로필 이미지
사진: Harit Srikhao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6월 코라크릿 아룬나는차이 개인전

8월 말 부산점에서는 영상, 퍼포먼스에서 회화,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작가는 다양한 형식을 정교하게 엮어내며 개인과 사회, 삶과 죽음, 여러 신념 체계를 아우르는 존재와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시해왔다. 그간 ‘고스트(Ghost)’라는 이름의 방콕 기반 영상 및 퍼포먼스 축제의 공동 설립자 및 기획자로도 활동해온 작가는 지난 가을 ‘고스트’의 마지막 회차를 마무리한 바 있다. 내년 부산 전시에서 아룬나논차이는 그동안 자신이 제작해온 영상 작품들을 돌아보며 영상언어의 확장성을 실험하고자 한다.

박서보(1931–2023)
〈Écriture No. 940106〉
1994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53 x 65.3 cm
Courtesy of Park Seo-Bo Foundation and Kukje Gallery
© PARKSEOBO FOUNDATION
사진: 박서보재단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9월 박서보 대규모 개인전

9월에는 작고 3주기를 맞은 박서보의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다. K1과 K3, 그리고 한옥 공간에 걸쳐 전개되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생전에 남긴 말,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한다. 그는 변화가 예술가의 숙명임을 잘 알았지만, 잘못된 변화가 또 다른 추락이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경계했다. 수년간의 수행으로 몸에 새긴 감각과 확신이 충분히 쌓인 후에야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던 그의 태도는, 박서보 예술세계의 핵심 원리이자 삶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적 윤리였다. 이번 전시는 1967년 최초의 연필 묘법 작품부터 2023년 마지막 연작인 신문지 묘법 연작에 이르기까지, 50여 년에 걸친 변화의 궤적을 따라간다. 특히 그 변화를 단순한 양식 변주의 연대기가 아닌 사유와 육체, 재료와 환경, 그리고 예술가의 생애 국면이 맞물려 형성된 ‘변화의 철학’으로 조명한다. 이 전시는 박서보에게 변화란 무엇이었으며, 그 변화가 어떻게 예술의 본질을 재고찰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었는지를 돌아볼 것이다.

김세은(b. 1989)
〈계층화된 굴〉
2025
Water mixable oil and marker on canvas
200 x 172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이의록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9월 김세은 첫 개인전

같은 시기 K2에서는 김세은의 국제갤러리 첫 개인전도 진행된다. 김세은은 경제적 가치와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끊임없이 재편되는 오늘날의 도시 환경에 주목하며, 그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시공간적 변화를 마주한다. 급변하는 도시 속에서 개인이 숱하게 맞닥뜨리는 순응과 거부의 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신체적, 정신적 행위를 통해 탐구하며 새로운 시각적 어휘를 모색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체계와 규칙이 만들어내는 ‘변화 중인 도시’는 작가에게 자신의 위치 감각을 인식시키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그 가운데 작가는 아직 ‘무엇’으로 명명되지 않은 상태들을 관찰하며, 결말 없이 흐르는 도시 풍경의 전후를 회화적 언어로 펼쳐낸다.

제니 홀저(b. 1950)
〈Survival: Protect me...〉
2018
Dark Labradorite bench
43.2 x 116.8 x 50.8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Jon Verney
© 2025 Jenny Holzer, memb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연말 제니 홀저 개인전

연말에는 한옥에서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지난 40여년 간 언어를 주요 재료로 삼아 작업해온 홀저는 다양한 원전의 문구를 여러 매체로 전달하며 역사적·정치적 불의를 고찰한다. 작가의 목소리를 빌어 제시되는 글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당대의 사회적 현안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차갑고도 감정적인 공공의 장(場)을 구축해낸다. 특히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간결한 경구들은 그간 LED, 대리석, 건물 외벽, 의류 등 다채로운 물성과 규모의 표면 위에 제시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친밀한 성격을 띠는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관람객이 다양한 거리감 속에서 텍스트를 독해할 수 있는 장(場)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희준(b. 1988)
〈The Dream of a Woman〉
2025
Acrylic and photo collage on canvas
160 x 8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이희준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2026 마지막 전시, 이희준

2026년의 마지막 전시로는 K1과 K2에서 이희준 작가의 신작을 소개한다. 끝없이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의 디지털 환경을 긴밀히 관찰하며 그 안에서의 회화의 역할과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는, 회화 안에서 사진과 조각의 방법론을 변주하며 도시와 건축 공간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그린다.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수집된 도시의 이미지는 잉크젯 프린터를 거쳐 회화의 청사진으로 번안되고, 그렇게 출력된 A4 단위의 흑백 이미지들은 캔버스 위에서 선과 원의 형태를 따라, 그리고 겹겹이 쌓아 올린 물감을 따라 이질적 시공간을 아우르는 다층적 감각을 시각화하게 된다.

(아트앤비즈=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