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 Jung Jin, 변신행2 Drawing Metamorphosis in Motion2 Drawing, 2025, pencil and color pencil and acrylic on paper, 47 x 35 cm
아뜰리에 아키는 15주년 특별전 2부 《ATELIER AKI: Here and Beyond》 Part II를 전시 1부 《ATELIER AKI: Here and Beyond》 Part I(2025. 10. 28 – 11. 29)에 이어 오는 12월 10일 프리뷰를 시작으로 12월 11일부터 2026년 1월 17일까지 개최한다.
《ATELIER AKI: Here and Beyond》 Part II 의미
지난 10월 열린 전시 1부가 갤러리의 성장에 함께해온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미술이 세계 속에서 일궈 온 공명과 자리를 되짚었다면, 이번 전시 2부는 아뜰리에 아키와 새롭게 동행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다음 흐름을 이끌어 갈 작가 7인을 주목하고 있다.
이는 곧 ‘다음’를 향한 시선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章)을 써 내려가는 작가들에 대한 주목이며, 아뜰리에 아키가 앞으로 글로벌 아트 신(scene)의 흐름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깊은 자리다.
참여작가 7인에 대하여
참여 작가 7인은 아뜰리에 아키가 면면히 제시해 온 ‘글로벌 확장성’과 ‘동시대성’의 예술적 담론을 각기 다른 언어로 풀어내며, 고유한 시선으로 새로운 시대의 미감을 탐구하고 동시대의 감각을 기록한다.
일상의 온기와 내면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김한나, 복제와 원본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의 구조를 성찰하는 남다현, 물질과 시간의 긴장을 통해 새로운 추상을 선보이는 백경호, 감각의 층위를 확장해 회화를 하나의 유기체로 제시하는 이세준, 감정의 결이 형상으로 피어나는 세계를 그려내는 임하리, 고전과 현대, 현실과 상상의 장면을 회화적 공간으로 전개하는 임현정, 그리고 회화를 살아 있는 언어로 사유하며 시대의 감각을 포착하는 정진까지 이들의 실천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늘의 예술을 보여준다.
김한나, 일상에서 피어나는 생의 온기
김한나의 회화은 ‘환상’과 ‘현실’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그녀의 오랜 상징인 ‘토끼’는 단지 자아의 분신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재된 또 하나의 존재이자 두려움과 연민, 순수함과 불안이 교차하는 감정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김한나 Kim Hanna, 정수리 보호 Crown Protection, 2025, oil on canvas, 34.6 x 27.3 x 4.1 cm
그녀가 구축한 회화적 세계는 꿈과 현실, 이상과 생존, 유년과 성숙이 뒤섞인 불안정한 경계 위에 서 있다. 그 경계에서 작가는 ‘살아남는 일’, ‘감정을 지켜내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면 속 ‘토끼’와 ‘한나’는 동화적 은유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현실의 압력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 존재로 자리한다.
작가는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샤워를 하며 하루를 이어가는 사소한 행위들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지를 발견한다. 그녀에게 이러한 일상의 장면들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감정과 상상을 통해 자기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생의 실천이다. 김한나의 회화는 그렇게 가장 평범한 시간 속에서 ‘존재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결국 작가의 화면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정서적 초상으로 자리한다. 현실 속 질서와 규범이 강요하는 속도와 방향을 잠시 멈추고, 그 틈에서 스스로의 리듬을 되찾으려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그녀의 화면 속 ‘한나와 토끼’는 작가 개인의 내면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적 분신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삶의 진심과 온기가 비로소 드러난다.
남다현, 복제의 미학 통한 동시대 예술 생명력?
남다현의 작업은 ‘복제’라는 행위를 통해 동시대의 시각 체계를 비틀고,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풍경과 대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에게 복제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탐구의 방식이다. 스티로폼, 폐부품, 종이, 박스 등 일상의 잔여로 구성된 그의 재료들은 현실의 부산물이자, 자본주의 순환 구조의 흔적이다. 남다현은 이러한 잔재를 예술의 장으로 옮겨오며 ‘실재’와 ‘가짜’, ‘원본’과 ‘사본’ 사이의 경계를 흔들고, 이미지와 사물의 권위를 해체한다. 그의 작품은 결국 “무엇이 진짜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실재과 허구가 교차하는 인식의 틈을 탐색한다.
남다현 Nam Dahoon, Small Black Pink Mountain, 2025, trash in a garbage bag, styrofoam, 48 x 17 x 17 cm
특히 작가는 현대 미술계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미학을 형성해온 앤디 워홀(Andy Warhol)과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등 주요 작가의 상징적 조형 언어에서 영감받아, 예술의 고유성과 작가의 이름이 자본의 체계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성찰한다. 워홀의 반복과 복제 개념, 론디노네의 상징적 형상은 남다현의 손에서 ‘폐기된 물질’을 통해 다시 태어나며, 예술과 상품, 자연과 인공 그리고 창조와 복제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그의 오마주(hommage)는 찬사을 넘은 질문이자 복제의 언어로 예술의 가치를 묻는 시도다.
백경호, ‘정신적 추상’의 현대적 해석
백경호의 회화는 표면에 새겨진 시간의 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매체의 밀도와 질감을 세밀히 조율하며, 반복되는 붓질과 긁기의 행위를 통해 감각이 침전되고 흔적이 축적되는 과정을 기록한다. 그의 화면은 완결된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의 존재’로 머물며, 그 안에서 물질과 시간은 서로를 관통하며 미묘한 긴장을 형성한다.
작가에게 회화란 이미지를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과 물질이 서로의 호흡을 나누는 장(場)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는 ‘정신적 추상’ 즉, 내면의 필연성(inner necessity)에 따라 형식과 색, 움직임이 스스로 말을 건네는 회화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화면 위에 남겨진 자국과 긁힘은 우연적 흔적이 아니라, 감각의 응축이자 내면의 진동이 물질을 매개로 표면에 침전된 순간이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물질의 표면을 넘어 정신의 울림을 시각적 파동으로 전이(轉移)시키며, 회화가 가지는 영적·정신적 가능성을 다시 일깨운다.
또한 그는 ‘보이는 것’보다 ‘남겨지는 것’에 주목하며, 그 표면 속에 감정과 사유, 그리고 예술이 지속되는 시간의 결을 고요히 새긴다. 물질이 시간으로 변환되는 지점에서, 감각이 다시 정신적 울림으로 환원되는 순간을 포착한 그의 화면은 완결이 아닌 진행, 정지가 아닌 생성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자체로 지속되는 추상 그리고 시간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이세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없는 풍경화
이세준은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채집하고, 그 위에 공명하는 색채와 흔적, 이미지의 잔재를 겹쳐 놓는다. 그의 화면에서는 형광빛과 원색이 충돌하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다른 시각적 층위가 교차한다. 작가에게 색은 감정의 온도이자 세계를 인식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 시각이 감각으로, 감각이 정서로 이어지는 회화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세준 Lee Sejun, Beyondscape 03, 2023, acrylic, oil and fluorescent pigment on linen, 130.3 × 192.7 cm
작가는 캔버스의 물리적 조건 또한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그는 사각형 평면을 분할하거나 이어 붙이며, 조각적·설치적 구조로 확장시킴으로써 회화를 공간적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시도는 회화를 단순한 재현의 장이 아니라 사유의 장으로 바꾸어 놓으며, 색과 형태, 재료는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끊임없이 재편된다.
화면 위에 펼쳐지는 구상과 비구상의 충돌, 형광빛이 어둠을 밀어낼 때 일어나는 조형적 떨림, 그리고 복수의 이미지가 형성하는 다층적 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궁극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그의 회화는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는가’에 대한 응답이다. 이세준의 화면은 완결된 이미지가 아닌, 매 순간 변화하고 살아 움직이는 감각의 세계이며, 그 안에서 회화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진화한다. 이러한 회화적 생명력은 오늘의 시각예술이 지닌 개방성과 불확정성을 드러내며,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임하리, 감정이 상상의 존재로 태어난 세계
임하리의 회화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정의 결로 이루어진 세계를 그린다. 그녀의 화면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털난빵’은 작가가 구축한 상상의 존재이자, 감정과 기억이 응결되어 형상화된 하나의 조형적 언어로 자리한다. 둥글고 털로 덮인 이 존재는 귀엽고 익숙한 형태를 지녔지만, 그 표면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정서의 결이 스며 있다. 작가의 사적 경험인 임신과 출산, 육아의 시간 속에서 겪은 내면의 변화와 감정의 진폭이 이 형상에 투영되며, 이는 인간이 품은 가장 내밀한 감정과 시간의 흔적을 상징한다.
임하리 Im Hari, 달빛이 비추는 바다에서 멜랑콜리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보이는 것들, 2024, acrylic on canvas, 112 x 145 cm
에어브러시와 붓질이 교차하는 임하리의 화면은 빛이 스며드는 듯한 부드러운 색감과 공기감으로 가득하다. 그녀는 두 매체를 병용하며, 부드럽고 대기감 있는 배경과 촉각적 질감을 대비시켜 회화의 표면에 미묘한 긴장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핑크, 보라, 청록빛이 번지며 만들어내는 흐릿한 경계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잇는 통로가 된다.
또한 작가는 완성된 서사가 아닌 과정을 담아낸다. 그녀에게 삶은 변화와 생성이 끝없이 이어지는 호흡이며, 회화는 그 리듬을 기록하는 행위다. 그녀의 화면에서 색은 멈추지 않고, 형태는 완결되지 않으며, 미세한 떨림 속에서 피어나고 사라지는 감정들이 모여 화면의 결을 이룬다. 관객은 그 진동을 따라가며 포근함과 쓸쓸함, 따뜻함과 공허함이 한데 섞인 복합적인 정서를 경험한다. 임하리의 화면는 그렇게, 사라지는 순간을 붙잡아 감정의 기억으로 남기며,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여운처럼 머문다.
임현정, 직관적 드로잉과 과거의 거장들
임현정의 회화는 기억과 감정, 그리고 상상이 교차하는 내면의 풍경을 그린다. 그녀는 ‘직관적 드로잉(Intuitive Drawing)’을 기반으로 손끝의 즉흥성과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감정으로 인식되는 장소들을 그려왔다. 그 과정에서 선과 색은 시간의 결을 따라 유영하며, 기억과 감각의 파편들은 하나의 유기적 세계로 엮인다.
특히 임현정에게 과거의 거장들은 단순한 인용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의 기원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환상적 서사,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정교한 묘사,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고독한 자연,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초현실적 병치는 그녀의 감각 속에서 체화(體化)되어 새로운 회화적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듯 작가는 예술사 속 이미지를 내면의 감정 구조 속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이미 그려진 세계를 다시 감각하는 회화적 실험을 이어간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실제로 마주한 섬과 숲, 바다의 풍경을 기억의 층위 속에 병치하며, 회화의 역사와 개인의 경험이 중첩된 다층적 공간을 구축한다. 이러한 화면은 작가의 내면을 시각화한 정서의 지도로 자리하며, 감정과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유한 회화적 질서를 만들어낸다.
정진, 만화적 선, 추상적 패턴이 중첩
정진은 회화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그녀의 화면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조각들이 한데 겹쳐지는 ‘심리적 장면’으로, 원근법에 충실한 구조 위에 낯익은 주체와 만화적 선, 추상적 패턴이 중첩된다. 그 안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흐려지고, 이미지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의미를 변형한다. 작가에게 회화란 하나의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감정과 욕망, 불안이 교차하며 스스로 확장되는 생명체와 같다.
정진 Jung Jin, 변신행2 Drawing Metamorphosis in Motion2 Drawing, 2025, pencil and color pencil and acrylic on paper, 47 x 35 cm
최근의 작가가 전개하는 변신을 모티브로 전개되는 신작에서 정진은 이러한 탐구를 한층 구체화한다. 그녀는 문학작품과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변화하는 존재들’의 형상이 뒤틀리고, 감정이 형태를 바꾸며, 욕망이 신체를 넘어서는 순간들에 주목한다.
동서양의 구전 설화부터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변형된 신체의 단면을 포착하며, 인간의 움직임과 내면의 긴장을 회화적 언어로 치환한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차용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불안과 열망,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에너지’에 대한 사유다. 그의 대표적인 Folded Screen 시리즈는 이러한 서사를 구조적으로 확장한 작업이다.
접히고 펼쳐지는 화면의 구성은 내면과 외부, 과거와 현재, 서사와 비서사 사이의 관계를 시각화하며 ‘그림이 말하는 법’ 즉, 회화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정진의 회화는 결국,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시도를 시각화한 기록이다. 동화적 서사와 현대적 감각이 교차하는 그의 화면은,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존재의 풍경으로서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Here and Beyond》 Part II, 동시대 언어의 응답 방식
아틀리에 아키 관계자는 "전시 《Here and Beyond》 Part II는 예술이 ‘지금’과 ‘그 너머’를 잇는 동시대의 언어로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조명한다. 서로 다른 감각의 결로 구축된 작가 7인의 세계는 오늘의 정서를 포착하며, 아뜰리에 아키가 주목하는 다음 세대 미학의 흐름과 방향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아뜰리에 아키가 15년간 축적해 온 여정을 토대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문법과 감각을 재정의하는 새로운 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트앤비즈=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