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컨템포러리는 2025년 10월 16일부터 11월 14일까지 조현선의 개인전 《Cadence》를 개최한다.
전시 《Cadence》는 작가가 지난 십여 년간 구축해 온 추상회화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면서도, 그것이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회고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예비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작업의 변곡점을 맞이했던 시기에 긴 호흡으로 완성한 Offset Lavender(2014–2018, ‘위장된 오렌지’ 연작의 마지막 작업)을 시작으로, 〈반달색인〉, 〈Puddle Jumper〉, 〈Pale Deep〉, 그리고 최근 도쿄에서 작업한 〈Phrase〉에 이르기까지 조현선의 추상회화가 거쳐온 여러 단계의 리듬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러나 이 전시가 다루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회화에 대한 사고와 감각이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전시 제목 ‘Cadence’는 음악에서 악절의 끝을 맺고 리듬의 흐름을 정돈하는 ‘종지(終止)’를 뜻한다. 전시는 조현선이 걸어온 추상회화의 궤적과 앞으로 이어질 흐름을 하나의 호흡으로 엮어내며, 다음 장으로 나아가는 종지의 순간을 포착한다.
조현선 작가의 의식의 흐름
조현선의 초기 작업들이 일상의 단편적 인상과 감각을 추상적 제스처로 환원해 회화적 언어로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 〈위장된 오렌지〉 연작을 계기로 작가의 작업은 외부의 인상을 그리는 대신 회화의 내부를 다시 보기 시작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어 등장한 〈반달색인〉 연작은 전작의 부분을 발췌하고 중첩하며, 회화가 스스로를 참조하는 구조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전 작품의 일부를 오려내거나 반전시키고, 다른 화면 위에 겹쳐 그리며 회화의 내부 논리를 탐색했다. 원본과 복제, 드로잉과 페인팅, 직관과 계획적 구축의 경계가 맞물리며 회화는 닫힌 이미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아카이브를 생성하는 열린 체계로 확장된다. 이러한 반복과 발췌의 방식은 단순한 형식 실험을 넘어, 회화가 시간과 기억을 어떻게 저장하고 다시 생성하는가에 대한 사유를 동반한다.
〈Puddle Jumper〉 연작은 그 구조적 탐구로부터 잠시 벗어나 회화의 물성과 손의 리듬으로 되돌아간 시기였다. ‘Puddle Jumper’라는 이름은 물웅덩이를 뛰어넘는 아이의 몸짓처럼 즉흥적이고 유연한 감각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 시기에 화면 위에서 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붓질의 흔적과 물감의 층위, 마름의 속도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따라갔다. 이전의 엄밀한 구성에서 벗어난 이 시기의 화면은 우연적 흐름이 주도하는 회화의 시간성을 드러낸다. 작가가 “눈과 손이 기억하는 오래된 습관을 뒤적이며 다시 그리기의 감각을 복원했다”고 말했듯, 이 시기의 작업은 회화가 사유의 체계이자 몸의 경험에서 비롯된 행위임을 환기시킨다.
새롭게 선보이는 〈Phrase〉 연작 '주목'
〈Phrase〉 연작은 이러한 회화의 리듬이 다시 문법의 구조로 정리되는 지점에 놓인다. 이 작업에서 조현선은 회화를 완결된 이미지가 아닌 문장을 이루는 구(句)로 이해한다. 각각의 화면은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붓질과 물감의 중첩, 멈춤과 이어짐의 호흡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작가가 말하듯, ‘Phrase’는 회화를 언어의 구조로 치환하기보다 언어 이전의 감각—말로 온전히 옮겨질 수 없는 리듬과 파동—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다. 익숙한 질서에서 살짝 벗어난 어조, 문장의 틈에서 머무는 정적, 끊어질 듯 이어지는 리듬이 화면 위에서 발생하며, 이 미묘한 차이들이 회화의 문법을 새롭게 세운다. 도쿄에서의 시간은 낯선 환경의 반영이 아니라, 그간의 반복적인 행위와 즉흥적인 호흡을 정리하고 조율한 시기였다.
〈Phrase〉는 지금까지의 모든 흐름—색과 붓의 움직임, 물감의 층위, 사고의 리듬—이 하나의 언어로 응축되는 단계이자, 앞으로 전개될 회화의 방향을 예고하는 연작이다.
전체 작품에 대한 소고
이렇듯 조현선의 회화는 구성과 감각, 계획과 즉흥 사이를 진자처럼 오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해왔다. 〈위장된 오렌지〉가 감각의 인상에서 출발했다면, 〈반달색인〉은 그 감각을 회화적 구조로 번안한 사유의 장이었다. 〈Puddle Jumper〉가 몸의 리듬으로 되돌아갔다면, 〈Phrase〉는 그 리듬을 다시 문법으로 다듬어내는 과정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Phrase〉 연작들은 이제 막 시작된 악절의 첫 구절로서, 여러 차례의 변주와 심화를 거쳐 점차 확장될 예정이다. 화면을 따라 흐르는 색과 호흡, 반복과 멈춤의 간격들은 하나의 문장을 이루며, 그 문장은 이제 막 첫 구절을 드러내고 있다. 그 문장이 멈춤과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시 숨을 고를 때, 조현선의 회화는 잠시 머물렀다가 새로운 챕터를 향해 나아간다. 그의 회화는 하나의 완결로 닫히지 않고, 매번 다음을 준비하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현선의 회화는 지금도 진행중이며, 그 리듬은 계속 이어진다.
[작가소개]
조현선은 색과 리듬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회화의 잠재성을 확장해온 추상회화 작가이다. 그는 색면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중심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지시하지 않은 채 감각과 사유가 교차하는 긴장을 구축한다. 미세한 색의 차이와 겹침은 작업 안에서 다양한 형태적 가능성을 열어두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이 회화의 시간성과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조현선의 작업은 구축과 즉흥, 감각과 사고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를 하나의 열린 체계이자 사유의 리듬으로 탐구한다. 그는 완결된 이미지를 지향하기보다, 회화가 변화하고 확장되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조현선(b.1981)은 미국 San Francisco Art Institute (학사)와 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 (석사)에서 회화와 드로잉을 전공하였다. 현재는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송은 아트큐브, 문신미술관 영상갤러리, 갤러리퍼플, 페이지룸8, 라흰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페이지룸8, 에이라운지, 평화문화진지, 인천아트플랫폼, Som Art Cultural Center, Root Division, Gallery Heart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공간에서 열린 그룹전에 초청되었다. 참여 레지던시로는 샌프란시스코 Root Division, 갤러리박영 스튜디오, 인천 아트 플랫폼, 갤러리퍼플 스튜디오가 있다.
(ART&BIZ= 김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