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는 뉴욕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9월 4일부터 10월 18일까지 신성희(1948–2009)작가의 개인전,《Body of Work》를 개최한다.
신성희는 2009년 작고하기 직전까지 일생 내내 회화의기초적 재료인 캔버스와 지지대에 천착해 왔으며 그 생동하는 물성을 환영과 재현,이차원과 삼차원의 관계,작가 자신의 신체의 역할 등 회화의 위상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연결지어 왔다.또, 1980년대에 파리로 이주한 이민 작가로서의 신성희는 갤러리현대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역사와 함께 걸으며 주목해온 세 가지 주요 영역인 한국 아방가르드,한국 디아스포라,신진 작가 중 역사적인 한국 디아스포라를 대표하는 작가다.
신성희의 회화 세계는 크게 네 시기 ‘마대 회화(극사실 물성 회화)’시리즈(1974–1982), ‘콜라주(구조 공간)’시리즈(1983–1992), ‘꾸띠아주(박음 회화)’시리즈(1993–1997), ‘누아주(엮음 회화)’시리즈(1997–2009)로 분류된다.이번 전시는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가로지르는 ‘꾸띠아주’와 ‘누아주’작업에 집중한다.캔버스를 채색하고 자른 뒤 지지대 위에 엮거나 매듭지음으로써 2차원과3차원,양과 음의 공간이 혼합된 다공성의 구조가 돋보이는 신성희의 대표적인 두 시리즈이다.
블럼앤포 갤러리는 2014년 《From All Sides: Tansaekhwa on Abstraction》 단색화 기획전에 이어,단색화 작품들과 미국 미니멀리스트 작품들 간의 대화형 전시를 기획하고, 2018년에는 《정상화,신성희》 2인전을 기획하여 신성희의 대표 연작인 누아주 시리즈의 미술사적 담론에 불을 지핀 바있다.이번 전시를 통해, 1970년대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반세기동안 지속된 글로벌 회화사를 관통하는 신성희의 전위성과 시대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의 위상에 관한 담론을 이어가고자 한다.
전시는 초기 마대 회화 중 하나인 〈회화(실상과 허상)(Painting (Reality and Illusion))〉(1979)에서 시작된다.실제 마대 위에 마대 조직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실재와 허상을 중첩시킨 작품이다.이 시기의 작업은 비교적으로 미니멀하고 색감도 차분하지만,후기작까지 꾸준히 이어질 재현과 환영 사이의 관계,즉 회화가 지시하는 것과 회화의 물적 존재의 관계에 대한 메타적 연구가엿보인다.
파리 이주 이후에 시작된 콜라주 시리즈는 뒷쪽 갤러리의 〈구조공간(Spaces ofStructure)〉(1992)두 작품으로 대표된다.극사실주의를 떠나 판지를 자르고 느슨한 그리드 형태로배열하는 즉흥적,자전적 과정으로 나아가며,작가의 말을 빌리면 “회화는 오히려 나의 생각들을지우고,묻어버리고,또다시 반복하는 행위 안팎의 과정으로 남아버린다.”1994년과 1995년의 〈연속성의 마무리(Solution de Continuite)〉는 전통 회화의 정결한 사각형 프레임에 반발하듯 비균일적으로 올이 풀리거나 뜯긴 모서리가 특징으로,완숙된 꾸띠아주 기법을보여준다.갈색 배경으로부터 분출하는 듯한 세로와 가로 띠들은 이전 시기의 콜라주 그리드의연장선상이자 해체를 알린다.
이후,신성희 회화의 공간성은 과감하게 확장되어 누아주 작업에 다다른다.작가는 골격을 연상시키는 캔버스 뒷면 지지대를 가시화하거나 (〈팔렛트(Palette)〉, 2009),날실과 씨실의 반복적 움직임으로 캔버스 바깥쪽으로 무한히 자라날 것만 같은 비정형적 형태를만들어 낸다(〈결합(Interlace)〉, 2003).누아주 작업은 매듭을 하나씩 엮어가는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과정으로 완성된다.따라서 완성된 작업도 계속적(durational)이고 한눈에 인지되기를 거부하며,관객들로 하여금 작업이 제시하는 새로운 시간성을 잠시나마 직접 취해봄으로써 비관습적인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게끔 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업은 유기적인 표면이 두드러지는데,완성된 발언이 아닌 다공성의 막처럼 작용함으로써 작가의 의도와,재료를 포함하여 그들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 사이를 매개한다.누아주 작업에서는 빽빽한 캔버스 조직 사이로 여러 겹의 구멍이 펼쳐지며 해양생물의 화석이나숲풀 바닥을 연상시킨다.〈팔렛트〉나 〈자화상(Self-Portrait (Autoportrait))〉(1997)에서는 오브제가추가되어 재료를 대하는 작가의 매개적 역할에 대한 메타적인,유머러스한 비판이 돋보인다.마치성긴 조직 속에 갇혀버린 듯 붓 자루가 걸려 있는데,마치 작가 자신의 ‘자화상’일뿐 아니라 그림이 스스로를 그려 버리는 ‘자화상’이기라도 한 듯 안쪽으로 굽어 있는 형상이다.회화의 환영 효과를 탐구한 초기작에서부터 엮음,박음 회화까지,캔버스라는 재료에 내재한 생동하는 주체성을밖으로 끌어내는 일에 주력해온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선택한 재료의 ‘언어’를 체화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숙명인지 모른다.그가 2005년 작가노트에서 선언했듯 말이다: “허상의 그림이 아닌 공간의 영역을 소유한 실상으로서 회화의 옷을 입고 빛 앞에 서자!”한국 근현대미술이 주류 미술사로 편입되고 있는 현재,단색화나 실험미술과 같은 예술 사조는세계 미술사의 재편성에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그러나 갤러리현대는 작가들 개인과 집단 운동사이의 복합적인 관계 또한 조명하고자 노력해 왔으며,이는 초국가적인 교류,이주의 역사와 뗄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믿는다.
신성희가 그 대표적인 예시로,그는 학창시절 스승이었던 김창열,정상화,유영국을 통해 한국 추상이 추구한 미학적 담론에 기반하여 단색화가 지배하던 시기에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 속에서 마대 천에 마대색의 유화를 사용하여 언뜻 보기에 모노크롬 추상회화 같지만,지지체인 마대의 표면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쌓아 올린 방법으로 화단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아울러 실험미술 세대의 작가들과 함께 서울비엔날레 등실험미술 작가들이 주도한 미술제에 동참하며 실험성이 돋보이는 회화 작업을 발표했으나,그의초기 모노크롬 회화는 단색화의 논의에서 거의 배제되었고 2009년 갑작스러운 작고로 누아주와꾸띠아주 연작처럼 한국 회화사의 혁신을 주도한 작품 세계는 실험미술의 역사에서도 크게 거론되지 못했다.
동시에 신성희는 파리 화단에서 활발했던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urface)운동이추구한 평면의 확장과도 거리를 두었는데,아방가르드 정신에서 기인한 동시대 작가들의 경향을충분히 흡수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회화의 평면 자체에 내재한 공간성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기때문에 파리 미술 신에서도 적극적으로 조명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따라서 서울 갤러리현대에서의 성공적인 개인전 《꾸띠아주,누아주》(2025)에 이어 뉴욕에서의 이번 전시는 작가와 공동체적 ‘신(scene)’의 지평 사이,그리고 물질적 존재로서의 작가와 캔버스 사이의 유동하는 관계를재조명하고자 한다.
신성희 작가에 관하여
1948년 안산에서 출생한 신성희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특정 사조에 속하지 않는 가장 독창적인화가로 평가된다.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하였다.신인예술상전신인예술상(1968),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1969),〈공심(空心)〉 3부작으로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1971)을 받았다. 1980년,그는 파리로 이주하여 30년간 작가 활동을 이어갔다.
신성희는 보두앙 르봉,파리(2022, 2016, 2000, 1997);갤러리 프로아르타,취리히(2013, 2009, 2003,2000);앤드류 샤이어 갤러리,로스앤젤레스(2002, 1999); INAX갤러리(2002),도쿄;갤러 리 꽁베흐정스,낭트(1998);시그마갤러리,뉴욕(1993);엘랑꾸르트화랑,엘랑꾸르트(1983)등 국내 외 주요갤러리와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갤러리현대는 1988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이탈리아에서의 첫 개인전이었던 팔라초 카보초에서의 미니 회고전을 포함하여2025년까지 총 10회의 개인전을 함께 했다.그의 최근 미술관 회고전은 2022년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주요 단체전은 환기미술관,서울(1994);그랑 팔레,파리(1982, 1981, 1980);도쿄도 미술관,도쿄(1976)등에서 개최되었다.
그의 작품은 유네스코 본부,파리;프랑스 현대미술수장고(FNAC),파리;국립현대미술관,과천;서울시립미술관,서울;경기도미술관,안산;부산시립미술관,부산;환기미술관,서울;호암미술관,용인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작가는2009년 서울에서 작고할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였다.파리의 체르누스키 미술관은 오는 2026년4월에 신성희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으며,이를 기념하여 리졸리(Rizzoli)에서 작가의 모노그라프를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