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는 프리즈 서울 2025의 ‘부스 B17’에서 추상회화의 거장 정상화(1932년생)와 조각가 존배(1937년생),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오가는 김보희(1952년생) 3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 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는 프리즈 서울 2025의 ‘부스 B17’에서 추상회화의 거장 정상화(1932년생)와 조각가 존배(1937년생),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오가는 김보희(1952년생) 3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정상화와 존 배는 평면과 입체라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시작하여, 평면의 입체성과 조각의 회화성까지 작업 세계를 확장하며, 공간과 물성, 시간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왔다.
자연 속에서 독자적인 추상, 조각, 구상적 회화의 세계를 창조하여 국내외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해 온 세 작가의 주요 작품을 한 자리에 펼치며, 독창적인 세 작가 작업 세계의 조응을 선보일 예정이다.
정상화 작가
정상화는 ‘뜯어내기’와 ‘메우기’라는 독창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평면성을 탐구하는 시적인 작품을 발표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작품 12-11〉(1973), 〈무제 76-8〉(1976)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작가는 1970년대부터 기존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마티에르를 사용한 비정형의 앵포르멜식 회화에서 점차 벗어나 평면의 깊이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색채를 엄격히 절제하고, 철저히 평면화를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단색 그리드 회화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번 부스에 출품되는 주요 작업은 백색의 회화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각각의 작품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다가가 보면 어느 하나도 같은 게 없다. 같은 백색이라 하더라도 작업마다 구성하는 요소가 달라 격자의 크기와 형태, 색채와 높낮이에 따라 화면의 표정과 색감이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3–5mm 두께로 고령토를 바르고 이를 네모꼴로 뜯어낸 뒤, 고령토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유채 또는 아크릴 물감으로 채워 넣는다. 이 행위는 격자의 간격이나 방향, 바탕 안료의 두께에 따라 매번 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정상화는 규격화된 작업 과정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전위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그는 과정 자체가 결과물을 정의하고, 동시에 작품이 갖는 모든 특성을 서술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는 완성된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작업 과정을 시각화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그의 회화를 “은밀한 숨결의 공간”이라 평한 바 있으며, 작가 자신도 이러한 ‘숨결’이 화폭을 넘어 무한한 시공간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맥락을 강조하는 개인전 《무한한 숨결》이 2021년 갤러리현대에서 개최되었다.
존 배 작가
존 배는 서울에서 태어나 일산에서 유년을 보내고, 1949년 미국으로 이주한 코리안 아메리칸 미술가로 철을 이용한 용접 조각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는 미국의 예술적 토양을 넘어 음악과 미술, 수학과 과학 등 다학제적인 관심사를 발전시켰고, 하나의 철사를 하나의 음처럼 사용하여 전체와 부분이 상호연결성을 갖는 조화의 조형 언어를 형성해 왔다.
학제 간의 탐구를 지속해 온 작가는 특히 위상학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관심은 대표작 〈두 개의 면을 가진 구〉(1976)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뫼비우스 띠처럼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하며, 구를 관통하는 여러 겹의 통로를 통해 안과 밖의 관계를 유동적이고 투명하게 표현한다. 또 다른 대표작 〈승천, 추락, 생존〉(1987)은 작가가 프랫 인스티튜트 재직 시절, 동료가 겪고 있던 심리적 압박을 목격한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짧은 철사를 밀도 있게 용접하여 물결치는 듯한 율동감을 만들어낸 이 조각은, 철의 물질성을 가볍게 전환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공중에 떠오를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작가는 음표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점과 선이 공간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작품을 형성하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공간 속 드로잉(drawing in space)’이라 표현한다. 존 배는 명확한 결과를 정해두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하며, 제작 과정에서 점과 선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흐름과 상호작용에 귀를 기울이며 형상을 구성해 나간다. 이러한 즉흥성과 조율의 과정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고, 그의 조각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관람객과 호흡하는 존재로 자리한다.
김보희 작가
김보희의 회화는 자연과 마주하는 섬세한 감각에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은 전통 한국화에 기반하여 인물화, 정물화, 강변 산수화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자연을 일정한 거리에서 관조하는 시선으로 표현했다. 이후 작가는 다양한 채색 수묵 기법을 적극적으로 혼용하면서 동양화 특유의 평면적 묘사에 유기적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풍경 회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양수리, 충주호반, 제주도 등 국내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마주한 풍경을 소재로 한 작업은 구도에 대한 참신한 해석이 두드러진다. 검은 덩어리처럼 단순화된 산과 섬의 형태,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잔잔한 수면은 채색이 배제된 순수 수묵만으로 표현되어 평면 회화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접근을 보여준다. 때로는 화면에 최소한의 이미지만을 남기고 여백을 강조하거나, 뒤로 물러나는 구도를 통해 시각적 거리감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양적 풍경 회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작업 세계를 두고 한 평론가는 김보희의 회화를 ‘명상적 풍경’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작가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품은 생명의 서사를 자신의 시선으로 조용히,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 작가는 모두 조수 없이 홀로 작업에 몰두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이들의 작업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밀도, 조형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에 대하여
정상화는 1932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 전쟁이 진행되던 1953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입학하여 수학하였고, 1959년부터 현대미술가협회와 악튀엘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엥포르멜 경향의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1967년 프랑스 파리에서 1년간 활동 후 귀국한 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고베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고,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다시 파리로 건너가 작업에 몰두했다. 1992년 11월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1996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짓고 자리 잡은 후에는 줄곧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상화는 갤러리현대, 서울(2023, 201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2021); 레비고비 갤러리, 런던(2020); 레비고비 갤러리, 뉴욕(2016); 생테티엔 현대미술관, 생테티엔(2011)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2020); 파워롱미술관, 상하이(2018); 도쿄 오페라시티 아트갤러리, 도쿄(2017); 국립현대미술관, 과천(2012); 바이엘러 갤러리, 바젤(2007); 브루클린미술관, 브루클린(1981) 등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도쿄 현대미술관, 도쿄; 스미스소니언 허쉬혼 미술관, 워싱턴 DC; M+ 미술관, 홍콩;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과천(2012); 바이엘러 갤러리, 바젤(2007); 브루클린미술관, 브루클린(1981) 등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도쿄 현대미술관, 도쿄; 스미스소니언 허쉬혼 미술관, 워싱턴 DC; M+ 미술관, 홍콩;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존 배는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 후, 대학원 과정으로 조각을 수학하였다. 존 배는 스물여덟 살에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교수로 임명이 되었고, 약 40년 동안 교직과 행정 역할을 맡으며 학교의 미술과 조각 프로그램을 이끌었고 2024년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박사를 수여 받았다.
존 배는 갤러리현대, 서울(2024, 2013, 2006, 1993);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 뉴욕(2024), 플라토(구 로댕갤러리), 서울(2003); 시그마 갤러리, 뉴욕(1997, 1994); 뉴욕 환기재단, 뉴욕(1982)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컬럼비아 대학교 왈라흐 갤러리, 뉴욕(2022); LA 카운티미술관(LACMA), 로스앤젤레스(2022);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2010); 갤러리 바이엘러, 바젤(2007); 스미소니언 미술관, 워싱턴 DC(2003); 환기미술관, 서울(2001, 1993); 뉴버거 미술관, 뉴욕(2000)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기획전에 참여했다.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프랫 인스티튜트, 뉴욕; 얼터너티브 미술관, 뉴욕 등이 있다. 작가는 현재 미국 코네티컷 페어필드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김보희는 1952년생으로 제주도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7년까지 모교의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동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김보희는 최근 제주현대미술관, 제주(2022); 캔 파운데이션, 서울(2021); 금호미술관, 서울(2020)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2021); 이중섭미술관, 제주(2021); 제주도립미술관, 제주(2019);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2018); 뮤지엄산, 원주(2016, 2014); 경기도미술관, 안산(2015); 서울시립미술관, 서울(2007, 2005, 2003, 2001, 1999–1993, 198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2004, 2003, 2000, 1994, 1989, 1985)등 다수의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보희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제주현대미술관, 제주; 외교부, 서울; 바이아트매터스(By Art Matters), 항저우 등 유수 기관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