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한국 현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격정적으로 채웠던 화가 공성훈(1965-2021)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2021년 1월 11일, 소장암이라는 병마 앞에 쉰여섯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그는, 생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동시에 ‘회화의 위기’라 불리던 시대에 회화만이 줄 수 있는 육중한 감동을 복원해낸 거장이었다. 사후 5주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왜 여전히 그의 거칠고도 서늘한 풍경 앞에 멈춰 서게 되는가!
'담배 피우는 남자(절벽)' (2013, 캔버스에 유채) 공성훈 출처 ; 변지은 아카이브
공성훈의 예술 세계는 1965년 인천에서의 태동을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거쳐, 제4회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기획전을 관통하며 단단해졌다. 그의 회화는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카메라 렌즈라는 기계적 시선과 화가의 손끝이라는 육체적 노동이 빚어낸 ‘실재의 파편’들이다. 초기 설치와 영상 작업에 몰두했던 이력은 그에게 회화를 단순히 평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자 ‘환경’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독특한 이력은 훗날 그가 캔버스로 돌아왔을 때, 전통적인 풍경화의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낚시>, 캔버스에 유채 (115x219cm, 2012) 공성훈 출처 ; 변지은 아카이브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주로 이론적 논쟁으로 시작 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2000년대에 들어 실제 미술 현장에서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실천으로 이어지며 그 맥락 속 2010년대 초반, 한국 미술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범람 속에서 매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설치, 영상, 개념 미술이 주류를 이루며 전통적인 회화가 다소 구식 매체로 치부되던 시기에 공성훈이 보여준 행보는 실로 파격적이었다. 그는 가장 정통적인 ‘그리기’라는 행위에 천착(專着)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동시대적인 공포와 불안을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은 단순히 기술적 숙련도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시대의 징후를 읽어낸 회화의 그의 철학적 승리였다. 그는 설악산의 능선, 밤바다의 물결, 폭포의 굉음, 그리고 숲속의 개와 같은 일상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를 결코 안온한 휴식처로 묘사하지 않았다. 대신 인공적인 조명과 기괴한 구도, 압도적인 자연의 위용을 통해 도시 문명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이는 매체 실험의 과잉에 피로감을 느꼈던 당시 비평계에 ‘회화만이 할 수 있는 동시대적 서사’의 정수를 명확히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파도 (2019 Oil on Canvas 227.3x181.8cm) 공성훈 출처 ; 변지은 아카이브
그의 회화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는 ‘불안’이다. 공성훈이 그려낸 바다, 폭포, 절벽, 그리고 밤의 도시 근교는 결코 안온한 휴식처가 아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보아 넘기는 일상의 풍경을 지독하리만치 낯설게 변주한다. 인공적인 조명이 비치는 밤바다의 시퍼런 물결이나, 숲속에서 번득이는 동물의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18세기 낭만주의 화가들이 추구했던 ‘숭고(Sublime)’—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와 공포의 복합적 감정—를 현대 한국의 일상적 공간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칸트가 말한 숭고가 신적인 질서에 대한 감각이었다면, 공성훈의 숭고는 동시대인이 느끼는 존재론적 불안과 허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술적으로 공성훈은 ‘회화적 리얼리티’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그는 직접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했으나, 결코 사진을 복제하지 않았다. 그의 캔버스 위에는 물감의 덩어리가 살아 움직이고, 거친 붓질의 흔적이 층층이 쌓여 있다. 멀리서 보면 완벽한 사진적 환영을 제공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이 물성의 투쟁은 디지털 이미지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회화의 존재 이유’를 웅변한다. 특히 그가 즐겨 사용한 강렬한 명암 대비와 비현실적인 색채는 익숙한 풍경을 하나의 ‘심리적 지도’로 탈바꿈시킨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인이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하게 되는 존재론적 허무를 가장 날카롭고 철학적인 회화로 형상화해냈다.
기술적 층위에서 공성훈은 ‘회화적 리얼리티’의 극단을 밀어붙이며, 물질성과 연극성이 교차하는 절묘한 변곡점을 제시한다. 그는 직접 포착한 사진 이미지를 캔버스의 밑그림으로 삼았으나, 이는 결코 사진적 외형을 답습하는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화면은 유화 물감의 육중한 덩어리들이 거친 붓질을 타고 생동하며, 그 층층이 쌓인 물성의 투쟁은 관람객에게 이중적인 시각 경험을 선사한다. 원거리에서는 정교한 ‘사진적 환영’으로 다가오지만, 한 걸음 다가서는 순간 회화 특유의 거친 생명력이 화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복제 기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오직 회화만이 점유할 수 있는 ‘존재의 이유’를 작가의 신체적 노동을 통해 증명해내는 과정이다.
<눈바람>, 캔버스에 유채, 227.3×181.8cm, 2011 공성훈 출처 ; 변지은 아카이브
특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예리하게 번뜩이는 번개나 인공적 광원에 의해 기괴한 질감을 드러내는 바위 등의 연출은 마치 영화적 미장센처럼 관객의 감각을 압도한다. 이러한 ‘연극적 장치’는 관객이 풍경 속으로 함몰되는 정서적 동화를 의도적으로 유보시키며, 철저히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 풍경이 내뿜는 서늘한 진실을 목격하게 만든다. 이러한 미학적 거리 두기는 현대 사회가 마주한 소외와 단절의 정서를 회화적 언어로 치밀하게 변주해낸 고도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단 몇 초 만에 매끄럽고 완벽한 풍경화를 생성해내는 2026년, 여전히 공성훈의 거친 붓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공의 매끄러움 속에는 작가가 캔버스 위에 쏟아부었던 ‘실존적 고통’과 ‘고독한 결단’의 흔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와 문명의 불확실성이 가속화된 오늘날, 그가 묘사했던 ‘불안한 자연’과 ‘위태로운 인간’의 형상은 이제 단순한 예술적 비유를 넘어 우리 시대를 향한 예언적인 경고로 다가온다. 그는 회화가 단순한 재현의 도구를 넘어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원초적인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강력한 정신적 매개체임을 전 생애를 통해 증명했다.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현시대, 공성훈은 캔버스와 유채라는 전통 매체의 물성(物性)에 대한 집요한 천착을 통해 역설적인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물감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도구를 넘어, 풍경의 무게와 질감을 부여하는 근원적 요소로 기능했다. 이는 매끈한 스크린에 갇힌 이미지들이 실재감을 상실해가는 시대에, 회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물리적 노동과 물질적 현존이 어떻게 강력한 예술적 발언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해왔다.
공성훈의 회화 세계는 인간과 자연, 문명과 야생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가장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게 담아낸 현대의 비극적 서사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21년 1월 11일, 그의 육체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캔버스 속에 봉인한 시퍼런 파도와 웅장한 폭포, 그리고 밤의 도시가 내뿜는 서늘한 공기는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바닷가의 남자 2019 227.3x181.8cm Oil on Canvas 공성훈 출처 ; 변지은 아카이브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 도사린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할수 있는가?” 사후 5주기를 맞이하는 지금, 공성훈이 남긴 유산은 우리가 잃어버린 ‘그리기의 숭고함’과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엄숙한 통로가 된다. 여전히 그의 ‘밤’은 우리 시대 위에 깊게 깔려 있으나, 그 어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마주해야 할 내면의 거울이다. 공성훈의 회화는 이제 하나의 역사적 양식을 넘어 불안한 시대를 건너가는 우리 모두의 이정표가 되었으며, 그가 남긴 영원히 마르지 않을 물감의 자취 위에서 한국 현대 회화의 미래는 다시금 숭고한 싹을 틔울 것이다.
(ART&BIZ= 정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