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마음새-몸새-이음새 _106.0×92.0cm, Mixed media, 2025
"나는 달항아리에 시간의 흔적과 자연의 호흡을 담기 위해 수많은 작업과정 끝에 혼합재료를(mixed media)선택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 예상치 못한 질감과 색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은, 삶이 겹겹이 쌓이고 흔적을 남기는 인간의 여정과 닮아 있다."
갤러리나우에서 지난 3일 오픈한 김선 작가의 개인전 '마음새-몸새-이음새'가 25일 막을 내렸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혼합재료를 선택한 이유와 그 과정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였다. 작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아봤다. 개인전을 미처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작품 사진을 충분히 실었다.
김선 작가의 '빙렬(氷裂) 기법'
평면이라는 공간 안에서 달항아리. 밑색 위에 재료를 얹고, 그 재료가 마르며 갈라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균열, 즉 ‘빙렬(氷裂)’. 작가의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재료 실험과 빙렬 기법을 통해, 도자기 고유의 질감과 온도를 캔버스 위에 시각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한 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달항아리,마음새-몸새-이음새_120.0×110.0cm, Mixed media, 2025
안현정 평론가는 김선 작가의 이번 전시와 관련해 "제목이 '빙렬감각(氷裂感覺)'인 이유는 달항아리를 ‘마음새-몸새-이음새’로 연결해온 작가의 투철한 태도를 감각적으로 느껴야 비로소 ‘달항아리 보기’가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작가 김선이 달항아리를 그리게 된 배경
평론가 윤일선
‘달항아리 작가’ 김선의 예술 여정은 어린 시절 즐겨 그리던 그림에서 시작됐다. 그는 “그림은 제게 놀이이자 삶 그 자체였고, 화가 말고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회상한다. 화가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붓을 잡는 순간의 행복과 열정은 늘 충만했다.
달항아리,마음새-몸새-이음새 _ 86.0×75.0cm, Mixed media, 2025 (2)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며 위기가 찾아왔다. “내 것”이 없다는 회의감이 몰려왔고, 방향을 잃은 채 수많은 실험을 반복했다. 붓조차 잡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균열(빙열)을 달항아리에 접목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는 “그 순간 달항아리가 제 작업의 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달항아리 작가’라는 별칭에 대해 김 작가는 긍정적이다. 그는 “달항아리는 제 작업의 중심 소재이자 상징적 언어이며, 전통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독창적 시도로서 제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향후 작업 방향에 대해 그는 “혼합재료와 빙열 표현을 더 발전시켜 회화와 조형의 경계를 탐구할 것”이라며 “달항아리라는 전통적 소재를 새로운 조형 언어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대중들에게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가, 달항아리를 통해 한국적 미학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로 기억되길 바란다. “‘치유하는 예술’을 목표로, 작품이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고 관람객에게는 삶을 보듬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람처럼, 김 작가는 오늘도 달항아리의 균열 속에 삶과 치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평론가 윤일선)
달항아리,마음새-몸새-이음새_156.0×130.0cm, Mixed media, 2025 (2)
다음은 김선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직접 언급한 작가노트를 그대로 공개한다. 작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노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김선 작가의 노트...진솔한 이야기
나는 달항아리에 시간의 흔적과 자연의 호흡을 담기 위해 수많은 작업과정 끝에 혼합재료를(mixed media)선택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 예상치 못한 질감과 색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은, 삶이 겹겹이 쌓이고 흔적을 남기는 인간의 여정과 닮아 있다.
달항아리,마음새-몸새-이음새_156.0×130.0cm, Mixed media, 2025 (2)
특히 내가 즐겨 사용하는 빙렬(crackle) 기법은 표면이 갈라지고 균열이 생기며 드러나는 심층을 통해 보이지 않는 기억과 세월의 깊이를 드러낸다. 내 작품의 빙렬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자연스러운 기록이자 ‘진행 중인 변화’를 상징한다.
옛 선조들은 1300도의 고온 속에서 백자 대호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늘이 허락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 과정처럼, 며칠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듯이 나 또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마음과 감각을 오롯이 평면 위에 옮긴다.
캔버스 위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안으며 기다림 속에서 완성된 한 점의 달항아리를 통해 삶의 균열 속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길 바란다.
(아트앤비즈= 김진부 기자, 미술평론가)